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지막 여정
1.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시작된 여정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와야 가능한 일일까.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특히 '아버지'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가족이라는 관계의 깊이를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파헤친다.
이야기는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며 시작된다. 주인공 ‘정화’는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낸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정화의 아버지는 생전에 한국전쟁 이후 노동운동, 통일운동에 몸담았던 공산주의자였다. 정화는 그런 아버지를 어릴 적부터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그의 삶을 불편한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2. 딸이 마주한 낯선 아버지의 얼굴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며 만나게 되는 마을 사람들, 아버지의 동지들, 오래된 편지와 물건들은 정화로 하여금 전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 그렇게 ‘나의 아버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간이 시작된다. 이 여정 속에서 정화는 점점 아버지의 삶에 귀 기울이게 되고, 마침내 그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3. ‘해방일지’, 한 사람의 역사이자 시대의 기억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펼쳐지는 딸의 회고록이자, 동시에 역사와 이념, 세대 간의 갈등과 이해를 섬세하게 다룬 현대사의 파편 같은 작품이다. 작가는 실제 본인의 아버지인 공산주의 운동가 정순철 선생을 모티프로 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단지 실제 이야기를 담아서가 아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가족에 대한 미해결 감정’을 따뜻하고 성숙하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정화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처음으로 알게 된 ‘해방일지’라는 이름의 노트는 소설 속 중요한 상징이 된다. 그 안에는 아버지가 썼던 일기와 생각들, 당시에 겪은 사건들의 단상이 담겨 있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망, 좌절과 의지를 상징하는 일기장이다.
4. 불편한 관계를 넘어, 온전한 이해로
서정적인 문장과 담담한 시선,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은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작가는 아버지를 단지 고통의 상징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고 거칠지만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 사람’으로 그려냄으로써, 그의 삶에 인간적인 존엄을 부여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자연스레 나의 아버지, 나의 가족, 나의 어릴 적 기억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따뜻하게. 이 책은 누군가의 이야기이기 전에 우리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렇게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 소설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위로이자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5.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곧 해방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덮고 나면, 이제는 늦었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다시금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희망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순간, 그것은 이미 하나의 ‘해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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